1부. 조용해진 집
아들이 결혼한 뒤로 처음 맞는 긴 연휴였다. 며느리의 밝은 목소리와 아들의 낮은 웃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던 며칠. 그 소리들에 섞여 있자니 분명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도 있었다.
존중과 거리 사이
"아버님, 식사하셨어요?" "아버지, 이번에 도로 정비 사업 맡게 되셨다면서요?"
그들은 나를 존중했고, 예의를 지켰다. 아침마다 며느리는 정성스럽게 아침상을 차렸고, 아들은 주말이면 나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외형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화목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의 친절이 때때로 벽처럼 느껴졌다. 마치 나를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으로 대하는 듯한 그런 기분. 아니, 어쩌면 손님보다 더 조심스럽게, 마치 섬세한 골동품을 다루듯 나를 대하는 것 같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님, 온도 괜찮으세요? 에어컨 좀 줄일까요?" "괜찮아, 딱 좋아." "혹시 목마르시면 냉장고에 보리차 있어요." "응, 고맙구나."
이런 대화들이 쌓일수록, 나는 이상하게도 더 외로워졌다. 아내가 있었다면 이런 식은 아니었을 텐데.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신 다리도 멀쩡한데 왜 내가 갖다 줘야 해?"라며 웃었다. 그 무심함이, 그 편안함이 그리웠다.
얇은 금이 가는 순간
며칠 전에도 그랬다. 세 사람이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데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님… 혹시 다음엔 좀 더 미리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말이야?"
며느리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저녁에 김치찌개 끓이려고 돼지고기랑 김치를 준비해뒀는데, 아버님이 낮에 이미 된장찌개를 끓여놓으셔서…" "아, 그랬구나. 내가 미안하다. 냉장고 보니까 두부가 있길래…"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만 아버님이 갑자기 음식을 만들어 버리시면, 제가 준비한 재료들이 다 남아서… 제가 괜히 일을 빼앗긴 것 같기도 하고…"
아들이 거들었다.
"아버지, 엄마 말씀은 서로 조금만 미리 얘기하면 좋겠다는 거예요. 저희도 아버지 챙기고 싶은데, 뭘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어요."
사소한 말이었다. 분명 예의를 갖춘 말이었고, 화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말 한 줄이 가슴에 얇은 금을 만들어냈다.
나는 웃으며 "그렇구나, 알겠다. 다음부턴 미리 물어볼게"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 집 냉장고에 있는 두부로 국을 끓였는데, 그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 '이 집이 이제 내 집이 아니란 말인가…'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봤다. 아내가 떠난 뒤 3년, 이 집은 분명히 내가 지어온 집이었다. 내가 30년을 살아온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집의 중심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주방은 며느리의 공간이 되었고, 거실은 아들 부부의 영역이 되었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정적이 가져온 자유
그들의 여행 일정은 일주일이었다. 신혼여행 겸 휴가라고 했다. 며느리 부모님께 인사도 하고, 제주도도 다녀온다는 계획이었다.
"아버님, 괜찮으시겠어요? 저희가 냉장고에 반찬 다 준비해놨고, 전화하시면 바로 올게요." "괜찮아, 너희나 잘 다녀와. 걱정 말고."
공항까지 배웅한 뒤 돌아오자 집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주차장에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공기가 달랐다. 아무도 없다는 게 느껴졌다.
거실에 불을 켰다. 소파는 그대로였고, 식탁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무언가가 확실히 달랐다. 오랜만에 찾아온 정적이 낯설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며느리가 정성스럽게 준비해놓은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포스트잇도 붙어 있었다. "아버님, 이거 드실 때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세요♥"
나는 그 메모를 떼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니, 버리려다 다시 붙였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저녁을 먹지 않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조용함 속에서 나는 숨을 쉬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아무에게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호흡.
그런데 그 낯섦 속에서 희미한 자유의 냄새가 났다. 내가 이 집을 떠나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그런 정적. 그들은 제주도 바다를 보고 있을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 있든 없든, 그들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집에서 조용히 사라져도 괜찮겠구나.'
아니, 정확히는 이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라진다면, 그들은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그들은 이 집에서 진짜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나는 서재로 들어갔다. 먼지가 앉은 책들 사이에서 오래된 수첩 하나를 꺼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 함께 여행 가고 싶은 곳을 적어두었던 수첩.
거기엔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진짜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2부. 짐을 싸는 밤
고요 속의 결심
아들 며느리가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손에 익은 수세미를 내려놓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불빛들이 유난히 밝았다. 다른 집들은 다들 저녁을 먹고 있을 시간. 텔레비전 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부부의 대화 소리로 가득한 시간.
나는 물기를 닦지 않은 손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불을 켜자 내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 꽂힌 낡은 전공서적, 작은 금고, 먼지가 앉은 아내의 사진, 오래된 군복, 그리고 40년 동안 직장에서 받은 표창장들.
모두 이 집의 역사였고, 동시에 내 인생의 흔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흔적들이 나를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떠밀었다.
'이젠 이지. 네 삶을 너에게 돌려줄 때.'
누가 한 말일까. 아내였을까, 아니면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였을까.
첫 번째 상자
나는 서랍을 열었다. 짐을 싸기 시작한 건 그저 책 몇 권 옮겨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읽지 않는 책들을 정리하면 아들 부부가 이 방을 서재로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 하나를 상자에 넣자 급류처럼 물건 하나하나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이 책은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며 읽던 것. 저 책은 첫 직장에서 상사에게 받은 선물. 그 책은 아내가 "당신 이런 것도 읽어?"라며 웃었던 소설책.
책장을 비우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상자 세 개가 책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단순히 책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흔적을 담는 일
옷장을 열었다. 와이셔츠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며느리가 다림질해서 걸어둔 것들이었다. "아버님, 이 셔츠 너무 낡았어요. 새로 사드릴게요"라던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새 옷은 필요 없다. 이 낡은 옷들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용 캐리어를 꺼냈다. 아내와 마지막으로 여행 갔을 때 샀던 것. 바퀴가 하나 덜컹거렸지만 아직 쓸 만했다. 거기에 옷가지들을 차근차근 넣기 시작했다.
아내의 물건들을 담을 차례였다. 작은 나무 상자 안에 아내의 목걸이, 반지, 머리핀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아내의 목걸이를 포장할 때는 손이 떨렸다.
"여보, 나 또 떠도는 거 아니냐고 하지 마."
혼자 중얼거렸지만, 방 안에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 나는 한 번도 집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한 적 없었다. 아내와 함께 있는 그 집이 세상 어디보다 아늑했으니까.
아내는 내게 뿌리였다. 아내가 있어서 나는 어디든 집이 될 수 있었고, 아내가 없으면 어디도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내가 떠난 뒤로, 집은 집이 아니게 되었다. 그냥 내가 임시로 머무는 공간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처럼 느껴졌다.
늘어나는 상자들
상자의 갯수는 예상보다 늘어났다. 사진, 옷가지, 아버지에게 받았던 낡은 시계, 내가 좋아하던 LP판들.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멈췄다. 아들의 돌 사진,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 중학교 수학여행 사진. 웃고 있는 아들과, 그 옆에서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젊은 시절의 나.
그때 나는 아버지였다. 확실한 아버지였다. 아들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아들을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지금 나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역할은 끝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 새로운 형태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사진들을 천천히 앨범에 넣고, 앨범을 상자에 담았다. LP판들은 하나하나 먼지를 닦아 포장했다. 베토벤, 모차르트,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던 이미자의 음반.
"당신은 클래식만 듣는 줄 알았는데, 이런 것도 듣네?"
아내가 웃으며 했던 말. 나는 혼자 미소 지었다.
마지막 액자
아들의 결혼식에서 받은 가족사진 액자는 마지막까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신랑 신부를 가운데 두고, 양가 부모님들이 함께 찍은 사진. 그날 나는 예복을 입고 있었고, 아들은 내 어깨만큼 컸고, 며느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분명히 행복한 날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내가 그 액자 속에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
'아버지'라는 틀 안에.
그 액자를 든 채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조용히 박스 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난 여기서 빠질게."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들에게? 며느리에게? 아니면 그 액자 속의 나 자신에게?
짐을 싸는 동안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눈물 대신, 오래된 억눌림이 하나 둘 풀리는 듯한 시원함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걸어온 사람이, 드디어 그 구두를 벗어던진 것 같은 해방감.
작별 인사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짐을 다 쌌다. 상자 열두 개, 캐리어 두 개. 60년을 살아온 흔적이 이것뿐이라니, 생각보다 적었다.
마지막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손때 묻은 문고리, 찢어진 소파 모서리, 아내가 사서 걸어놓았던 벽시계, 벽에 남은 못 자국들.
거실 한쪽에는 아들 부부가 새로 산 소파가 놓여 있고, 주방에는 며느리가 산 새 그릇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이 집은 조금씩 그들의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맞는 일이었다.
나는 현관문 앞에 서서, 집 안쪽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어, 나."
그 모든 것이 내게 말했다.
"떠나도 괜찮아."
벽에 걸린 시계가 똑딱똑딱 소리를 냈다. 거실 창문 사이로 새벽 공기가 조금 들어왔다. 나는 불을 끄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내일부터 진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짐을 싼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처음으로,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들었다.
3부. 고향으로 가는 길
마지막 새벽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섰다. 알람 소리도 없이 눈이 떠졌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이 떠나는 날이라는 것을.
조용히 일어나 세면을 하고, 며느리가 다려놓은 셔츠를 입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어떤 결심을 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아들 며느리가 없는 동안 떠나야 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이미 먼 곳에 있을 테니까. 전화를 받을까 말까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식탁 위에 편지 한 장을 남겨두었다. 길게 쓰지는 않았다.
"잘 지내거라. 아버지도 잘 지낼게. 걱정하지 마라. 연락은 내가 할게."
그게 다였다. 변명도, 설명도 없었다. 어차피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내 선택을 존중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가벼운 걸음
짐은 미리 택배로 보냈다. 어제 저녁에 택배 기사가 왔을 때 "이사 가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정리 좀 하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 인생을 정리하는 중이었으니까.
내가 들고 나온 건 작은 가방 하나뿐. 옷 몇 벌과 세면도구, 약, 그리고 아내의 사진 한 장. 오랜만에 가벼운 걸음이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주저할 것 같았다.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를 지나고, 아파트 정문을 나섰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12월 중순의 공기.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거리는 고요했다. 가로등 아래로 청소하는 분 한 명이 보였다. 그분도 누군가의 아버지였을까, 어머니였을까.
택시를 잡아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기사님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마운 침묵이었다.
차창에 비친 얼굴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던 길,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창밖의 불빛들이 지나가면서 내 얼굴을 간헐적으로 비췄다.
조금 늙고, 조금 외로워 보이는 얼굴. 주름이 깊게 패인 이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처진 눈꺼풀. 60대 중반의 평범한 남자.
하지만 기묘하게도 평온했다. 어제까지 거울을 볼 때마다 느꼈던 그 답답함이 없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확신 같은 것도 없었고, '나는 불행하다'라는 한탄도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였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표를 끊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전라북도 ○○까지요."
"왕복이요?"
"편도요."
표를 받아들고 대합실로 가는 길, 커피 자판기 앞에 섰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자 종이컵에 뜨거운 커피가 담겼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커피를 들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대합실을 둘러보았다. 새벽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군인, 학생, 가족 단위 여행객들.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처럼.
여명 속의 출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비워진 내 고향 집. 그곳엔 이미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을 터였다. 일 년에 한두 번 성묘 갈 때마다 들르긴 했지만, 제대로 손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그 집은 아직 내 집이었다.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어머니가 "네 이름으로 해뒀다"고 하셨을 때, 나는 "어머니가 더 오래 사셔야죠"라고 말했었다. 어머니는 웃으며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라고 하셨다.
만약은 5년 전에 찾아왔다. 어머니는 조용히 잠드시듯 돌아가셨고, 나는 그 집을 비워둔 채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그 집으로 돌아간다. 도망치는 건지, 돌아가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버스에 올라타자 창밖으로 여명이 비쳤다. 하늘이 점점 밝아지면서 어둠은 물러났고, 나는 이상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내가 지금 가는 곳이 나의 진짜 노년이겠구나.'
서울에서의 삶은 내가 만든 삶이 아니었다. 직장, 결혼, 육아, 아내의 죽음, 아들의 결혼. 모두 열심히 살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해야 하는 삶'이었다.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버스가 출발했다. 엔진 소리가 낮게 울렸고, 터미널을 벗어나 큰 도로로 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버스는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향했다. 고층 빌딩들이 사라지고, 낮은 건물들이 나타났다. 가로수들이 스쳐 지나가고, 논과 밭이 펼쳐졌다.
어린 시절 뛰놀던 풍경과 거의 똑같았다. 아니, 정확히 똑같지는 않았다. 비닐하우스가 많아졌고, 도로가 넓어졌고,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본질은 같았다. 흙과 나무와 하늘.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졸고 계셨다. 가끔 고개가 떨어질 듯하다가 다시 일으켜지곤 했다. 나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장에 가실 때면 나는 혼자 마당에서 놀았다. 개미들을 쫓아다니고, 돌멩이를 던지고, 나뭇가지로 땅을 파곤 했다. 그때는 세상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 갔을 때, 버스에서 내리며 뒤돌아봤던 기억. 어머니가 손을 흔들고 계셨다. 나는 "금방 돌아올게요"라고 외쳤지만, 실제로 돌아온 건 명절 때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고향은 점점 멀어졌다.
이제 다시 돌아간다.
도착
세 시간 만에 버스가 도착했다. 작은 시외버스터미널.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매점 아주머니도 여전히 계셨다.
"저기요, 택시 어디서 타요?"
"저기 나가시면 있어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기사님이 "성묘 가시나요?"라고 물었다.
"아니요, 집에 가는 겁니다."
"아, 여기 사시나 봐요?"
"옛날에 살았어요. 이제 다시 살려고요."
"그러시구나. 요즘 귀촌하시는 분들 많으세요."
귀촌. 그런 거창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냥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흙 냄새와 삐걱거리는 문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들이마신 흙 냄새는 오래된 기억을 찌르는 듯했다. 비린 듯하면서도 따뜻한 흙 냄새. 서울의 매연과는 다른 냄새.
고향 집 앞에 섰다. 낡은 대문, 녹슨 문고리. 열쇠를 꺼내 문을 여는데 손이 떨렸다.
문은 삐걱거리며 열렸고,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먼지가 쌓인 방, 벗겨진 벽지, 시간이 멈춘 듯한 집. 마루는 삐걱거렸고, 부엌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냄비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반겨주는 어머니의 품 같았다.
"어서 와, 많이 힘들었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먼지가 날렸지만 상관없었다. 처음으로, 정말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첫 밤
그날은 청소만 했다. 먼지를 닦고, 창문을 열고, 이불을 널었다. 택배로 보낸 짐들은 내일 도착할 예정이었다.
해가 지자 어둠이 찾아왔다. 서울과는 다른 어둠. 가로등도 별로 없고, 차 소리도 거의 없었다. 대신 벌레 소리가 들렸고, 바람 소리가 들렸다.
저녁은 대충 라면으로 때웠다. 어머니가 쓰시던 냄비에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고, 계란을 풀었다. 간단한 저녁이었지만 맛있었다.
그날 밤, 침대 대신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한테도 다시 한번 시작이 가능할까?'
대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창밖으로 별이 보였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별들. 나는 그 별들을 보며 잠이 들었다.
처음으로, 미래가 궁금해졌다.
4부. 아들의 전화
평온했던 사흘
고향에 정착한 지 사흘째. 그 사흘은 놀라울 만큼 평화로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당으로 나가 맨발로 흙을 밟았다. 차가운 흙의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새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이웃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누군가도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청소를 하고, 창문을 닦고, 마당의 잡초를 뽑았다. 손에 흙이 묻고, 땀이 났다. 오랜만에 몸을 쓰는 일이었다. 서울에서는 집안일도 대부분 며느리가 했으니까.
택배로 보낸 짐들이 도착했다. 상자를 하나씩 풀며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았다. 책은 책장에, 옷은 장롱에, LP판은 오래된 턴테이블 옆에. 아내의 사진은 작은 탁자 위에 놓았다.
"여보, 우리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네."
사진 속 아내는 웃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혼자 돌아오게 될 줄은.
동네를 산책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어떤 집은 사라졌고, 어떤 집은 새로 지어졌다. 하지만 언덕길의 경사, 개울의 위치, 오래된 느티나무는 그대로였다.
"어머, 춘식이 아니야?"
슈퍼마켓 앞에서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나를 알아봤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머, 얼마 만이야. 서울 살다가 내려왔어?"
"네, 잠시 지내보려고요."
"그래, 잘했다. 여기가 좋지. 서울은 사람 살 데가 못 돼."
짧은 대화였지만 따뜻했다. 서울에서는 이웃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밤에는 마당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별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저 존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 사흘 동안 나는 전화를 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울리는 전화
사흘째 되는 날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아들'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처음에는 받기 싫었다. 내가 떠난 걸 알면 당황할 것 같았다. 화를 낼 수도 있었고, 걱정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실망할 수도.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나는 젖은 손을 닦으며 망설였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버지?"
아들의 목소리였다. 조금 다급하고, 조금 불안한 목소리.
대화
"아버지, 어디세요?"
"고향이다."
"…왜요?"
아들의 음색이 떨렸다. 뭔가 잘못된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나 보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잠시 와서 지내보려고 한다."
"말도 없이요?"
"너희 둘 여행 가 있는 동안이 좋을 것 같아서."
"편지는 봤는데… 고향에 가신 줄은 몰랐어요.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건강은 괜찮으시고요?"
"괜찮다. 걱정 마라."
아들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며느리와 대화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 우리가 뭐 잘못했어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다. 그런 건 아니다."
거짓이었다. 아니, 거짓은 아니었지만 전부를 말한 건 아니었다.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견디지 못한 거라고. 너희의 배려가 부담스러웠고, 너희의 존중이 벽처럼 느껴졌다고. 그런 내가 이상한 거라고.
하지만 단 한 번도 솔직하게 말해본 적 없었다. 아버지란 존재가 그렇다고 배웠으니까. 아버지는 강해야 하고, 의연해야 하고, 자식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아들의 질문
하지만 아들은 계속 물었다.
"아버지, 저희가 불편하게 해드렸죠? 제가 눈치를 못 챘어요?"
"아니다."
"며느리가 아버지한테 뭐라고 한 거 있어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럼 뭐예요? 왜 갑자기 집을 나가세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다만 내가, 나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그 집에서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아버지, 돌아오실 거죠? 며칠만이죠?"
"글쎄다."
"네?"
"아직 모르겠다."
"아버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아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 듣는 음색이었다. 내가 아는 아들은 항상 침착하고 차분했다. 직장에서 승진도 하고, 결혼도 잘하고,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아들.
그런데 지금 전화기 너머의 아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쩌면 무너지고 있었다.
깨달음
그때서야 나는 느꼈다. 아들이 아니라, 내가 자식을 밀어낸 것이었음을. 나 스스로 '불편함'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들의 배려도 무게로만 받아들였다는 걸.
며느리가 음식 재료 이야기를 했을 때, 그건 진짜로 나를 비난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거였을지도.
아들이 산책을 가자고 했을 때, 그건 나를 챙기려는 의무감이 아니라 진짜로 함께 걷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나는 그들의 선의를 전부 의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의무가 무거워서 도망쳤다.
"아버지, 있잖아요."
아들이 다시 말했다.
"저희가… 저희가 서툴렀어요.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어요. 혼자 계시게 해드려야 하나, 챙겨드려야 하나.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
"저도 처음이에요. 결혼해서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게. 며느리도 처음이고요. 우리 다 서툴러요. 그래도 노력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말
아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우리가 아버지한테 부담 드린 거 아는데… 그래도 가족이잖아요. 그냥 솔직히 말해주면 안 돼요?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싫으면 싫다고. 저희도 맞춰갈 수 있어요. 그런데 말도 없이 떠나시면… 저희는 어떻게 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가족에게조차 마음을 내어놓는 방법을 모르는 채 살아왔던 것이다.
"아버지, 지금 당장 돌아오시라는 게 아니에요. 고향에서 좀 쉬시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그냥 연락은 하세요. 우리 가족이잖아요."
"…알았다."
"정말 괜찮으세요? 아프신 데 없으시고요?"
"없다. 걱정 마라."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전화드릴게요."
"그래."
전화가 끊겼다.
공허
전화를 끊고 나서야 방 안이 갑자기 좁아졌다. 짐을 싸던 그 시원함 대신 텅 빈 공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창밖은 어두웠다. 별이 보였지만 사흘 전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의 사진을 바라봤다.
"여보, 내가 잘못한 걸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당신 참, 답답한 사람이야. 아들한테 그냥 말하면 되잖아."
아내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항상 직설적이었으니까.
마당으로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자유를 찾아 여기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냥 도망친 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불편함으로부터, 책임감으로부터,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진짜 자유는 떠나는 게 아니라, 솔직해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60년을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나는 그날 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사흘 만에 처음으로, 집이 외로웠다.
5부. 다시, 문 앞에 서서
긴 밤
아들과의 전화를 끊고 난 뒤, 나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방 안을 서성이다가, 마당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새벽 네 시쯤,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며느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나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열었다.
며느리의 메시지
장문의 메시지였다.
"아버님, 저예요. 아버님께서 불편하실까 봐 조심하려 했던 말들이 혹시 상처가 되었나요? 김치찌개 재료 이야기도, 온도 조절하는 것도, 다 아버님을 배려하려던 거였는데… 오히려 아버님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저도 처음이에요. 시아버님을 모시는 게. 엄마한테 물어봐도 '조심하라'는 말만 하시고,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안 가르쳐줬어요.
저희가 부족해서 아버님이 떠나신 것 같아 너무 죄송해요. 남편도 어젯밤에 많이 울었어요. 아버님이 전화 끊으시고 나서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더라고요.
아버님, 천천히 쉬시다 오세요. 아버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집은 그대로 비워둘게요. 아버님 방도, 거실도, 다 그대로 놔둘게요.
돌아오실 거죠? 제발요."
나는 그 메시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읽었다.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고, 떨리고, 간절한 목소리.
"남편도 어젯밤에 많이 울었어요."
그 문장에서 눈이 멈췄다. 아들이 울었다고? 내 아들이?
언제부터 내 아들을 이렇게 몰랐던 걸까.
깨달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떠난 건 상처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 스스로를 잃은 기분이었기 때문이구나.'
며느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아들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 숨은 '나'라는 사람.
아내와 함께 살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불안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불편해질 틈을 주지 않았다. 언제나 조용히, 자연스럽게 내 자리를 만들어줬다.
"당신 밥 먹어." "당신 피곤하면 먼저 자." "당신 오늘 기분 안 좋아 보이네."
아내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40년을 함께 살면서 만들어진 언어 없는 대화.
그러나 이제는 내가 나에게 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내가 해주던 일을 이제 스스로 해야 했다.
"나는 이런 게 불편해." "나는 이런 게 좋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걸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돌아가기로 결심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 여섯 시.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짐을 다시 꾸렸다. 이번에는 떠나기 위한 짐이 아니라, 돌아가기 위한 짐.
상자들을 다시 열었다. 아들의 돌 사진, 가족사진 액자, LP판들. 며칠 전 이곳으로 가져온 것들.
하지만 이번에는 다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책 몇 권, LP판 몇 장, 아버지의 시계는 여기 두기로 했다. 이 집도 여전히 내 집이니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니까.
그리고 그 짐에는 아내의 사진 대신 작은 쪽지 한 장을 넣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였다.
"괜찮다. 이제는 도망치지 말자.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하자. 외로우면 외로운 거고, 힘들면 힘든 거다. 그게 살아있는 거니까."
쪽지를 접어 지갑에 넣었다.
귀환
버스 터미널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고향 집을 뒤돌아봤다. 며칠 전 도착했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다시 올게.'
이번엔 도망치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거였다. 서울로 돌아가는 것도,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는 것도, 모두 내 선택.
버스를 타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 나는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창밖 풍경이 달라 보였다. 며칠 전 떠날 때는 도망치는 사람의 눈으로 봤다면, 이제는 돌아가는 사람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갈 때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저녁에 도착한다. 저녁은 내가 차릴게."
답장은 금방 왔다.
"아버지. 기다릴게요."
고향 집을 떠나올 때 문득 등 뒤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한 것 같았다.
"잘했다."
어머니였을까, 아내였을까. 아니면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였을까.
현관문 앞
저녁 여섯 시, 익숙한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심장이 빨리 뛰었다. 떠날 때와는 다른 떨림이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현관문 아래에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열어보니 아들의 손글씨였다.
"아버지, 집에 오시면 말없이 안아드릴게요. 제가 먼저 안아도 될까요?
아버지가 불편하시면 그냥 악수만 할게요.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그냥 돌아와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봐요. 이번엔 서로 솔직하게."
손 편지였다. 아들이 언제 마지막으로 손 편지를 쓴 게 언제였을까. 초등학교 어버이날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며칠 전까지는 무겁고 낯설기만 했던 그 문고리가 오늘은 손에 꼭 맞았다.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는데,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포옹
아들이 서 있었다. 며느리도 그 뒤에 있었다.
"아버지…"
아들의 눈이 붉었다. 울었던 흔적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나를 안았다.
"…돌아오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아들의 등을 토닥였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어느새 나보다 어깨가 넓어진 아들.
"미안하다."
"아니에요. 저희가 미안해요."
"아니다. 내가 말을 안 했지."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며느리도 눈물을 닦으며 웃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
문이 열렸다. 천천히, 소리 없이.
집 안은 며칠 전과 똑같았다. 아니, 조금 달랐다. 거실 탁자 위에 꽃이 놓여 있었다. 며느리가 준비한 것 같았다.
"아버님, 짐 제가 들어드릴게요."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할게. 너희도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하고. 그렇게 하자."
아들과 며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네, 아버님."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을 둘러봤다. 내 방 문도 열려 있었다. 창문 너머로 저녁 노을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속삭였다.
"나 왔다."
아내의 사진을 향해, 이 집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이제 시작이었다. 진짜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시작.
도망치지 않고, 솔직하게,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삶.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저녁 식탁에는 세 사람분의 그릇이 놓였다. 며느리가 차린 저녁이었다.
"아버님, 이거 제가 만든 김치찌개예요. 입맛에 안 맞으실 수도 있는데…"
"고맙다. 맛있겠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어색하지만 따뜻한 저녁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게 가족이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 노력하는 것.
창밖으로 별이 보였다. 고향 하늘의 별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웠다.